"이건 비밀인데, 누군가는 번개를 푸른 불꽃이라고 불러."
<외관>
출처 : 진화님 커미션
학창 시절과 비교하였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여전히 잘 관리된 핑크색 머리카락은 귀한 집에서 대우 받고 자란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눈에 띄는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학생 시절부터 기르고 있는 뒷머리가 이제는 기장이 목을 훨씬 뛰어넘어 이제는 장발이 된 점일까.
살짝 올라간 눈매의 적안과, 인상 또한 달라진 점이 없다, 여전히 사람들을 보면 다정하게 휘어지며 눈웃음을 보여주며 웃고 있으며, 그는 여전히 강아지를 닮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교복을 입을 나이가 아니므로, 당연히 교복은 입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는 마법사용 망토를 걸쳤으며,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흰색의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지팡이 모양 목재 목걸이는 그가 가장 아끼는 것들 중 하나인데. 그의 사촌 동생인 디아나 알베르타가 직접 만들어 선물해준 것이다.
<이름>
체칠리오 알베르타 / Cecilio Alberta
<키/몸무게>
180cm / 64kg
<나이>
26세
<직업>
지팡이 장인
<혈통>
순수혈통
<성별>
남성
<성격>
자상한 | 다정한 | 책임감 있는
천성적으로 다정하고, 상대방의 좋은 점만 찾는 성격은 나이를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되려 더욱 깊어졌다면 모를까. 여전히 큰 소리를 내는 경우 또한 별로 없으며, 고집을 쉽게 부리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그것에 공감을 해주는 일 또한 좋아하니 주변인들에게 여전히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을 바뀌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비료가 되어 지금의 체칠리오의 다정함을 이끌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존중해주었으며, 그것은 그가 어떠한 주장과 말을 하더라도 같은 태도로 그를 대해주었다.-그것이 현 시점에서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그저,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은 다정함을 남에게 돌려주는 것 뿐이다.
오랜 시간 그를 고심하게 만들 고민은 끝이 났다. 결론을 내었으니, 이제는 행동하고 움직일 뿐. 그는 이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자신이 행동한 바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렇기에, 그는 오늘도 자신의 삶을 더욱 멋지게 꾸려 나가기 위해서 가게의 문을 연다.
<기타사항>
알베르타 가문에 대해서
알베르타 가문은 대대로 지팡이를 만들어던 ‘지팡이 장인’ 가문이다. 그들을 뿌리를 추적하자면, 이탈리아에 닿아있지만, 가문 구성원들 대부분의 이름이 이탈리아 어에서 따와 지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알베르타 가문은 영국의 지팡이 사업의 대부분은 올리벤더가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방향을 조금 틀어 지팡이 장식 및 세공업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 사업 확장을 도모하였는지, 지팡이 장식뿐만이 아니라 목걸이, 귀걸이 등의 악세사리 사업에도 서서히 손을 뻗고 있다.
현재는 지팡이 장식 및 세공업에 종사를 하고 있더라도, 그들이 뛰어난 지팡이 장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알베르타 가문의 가주의 자리는, 가문의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지팡이 장인이 앉는 자리이다. 다수의 알베르타의 구성원은 지금도 여전히 지팡이 장인으로서의 지식을 배우고, 익힌다. 그들의 뿌리는 지팡이 장인이므로.
전 가주, 니콜로 알베르타의 사후. 가주 자리에 오른 템페스타 알베르타의 실력이 모든 알베르타를 통틀어 가장 좋은 지팡이 장인이냐, 라고 묻는다면 알베르타 가문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모든 알베르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사실을 배우면서 자란다. 지팡이를 다루는 기술은 결코 그들에게 2번째로 중요한 것에 불과하다. 직계와 방계에 구분을 두지 않으며, 대부분의 가문 구성원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아래에서 자란다.
알베르타 가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자, 가족이기 때문인지 직계와 방계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 혈통 또한 중한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가문내의 스큅의 비율도 약간은 존재한다.
알베르타 가문은 혈통 차별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는 가문은 아니나, 변화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1965년 시행된 마법부의 <머글본 등록제도>에 따라, 마법부의 협조 요청을 받아 마법부에서 넘겨받은 머글본 마법사들의 지팡이 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알베르타 가문의 후견인은 오로지 ‘알베르타 가문의 사람'뿐이다. 후원을 자처할 정도로 돈에 궁하지 않았으며 알베르타의 이름으로 보호할 것은 오로지 알베르타 밖에 없기 때문이다.
1980년, 알베르타 가문의 가주, 니콜로 알베르타의 건강 악화로 인한 임시 가주로서 누불라 알베르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선언은 1978년, 그리고 1979년에 시행된 <혈통에 근거한 완전한 평등 실현에 관한 법룰(이하, 혈통법)> 과 <혈통조사사업>에 따른 조치로 알베르타 가문은 ‘순수한 마법사가 아닌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물건을 팔지 않겠다.’이였다.
이에 따라 마법 사회에서는 ‘순수한 마법사’들에게만 물건을 팔겠다. 선언한 이후, 자신이 순수한 마법사라는 것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알베르타의 지팡이와 장신구를 소유하는 마법사들이 많아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알베르타 가문이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마법부에서 알베르타 가문의 ‘일부’ 사람들의 혈통을 문제삼있다. 이에, 알베르타 가문은 구성원을 지키기 위해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친 마법부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1984년, 알베르타 가문의 가주. ‘니콜로 알베르타’의 사망으로 인해 1년간 알베르타 가문에서는 가문 내에서의 어떠한 주문도 받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두고, 알베르타 가문 안에서 가주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으나, 알베르타 가문에서는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후, 1985년. 임시 가주 자리에 있었던 누볼라 알베르타가 아닌, 템페스타 알베르타가 정식 가주 자리에 앉았다.
지팡이에 대해서
체칠리오의 지팡이는 로부르참나무 목재에 천둥새의 꼬리털이 심으로 들어간 13인치에 약간 유연한 지팡이이다.
그의 지팡이는 일반적으로 영국의 마법사들이 ‘올리벤더의 지팡이 상점’에서 구매하는 것과는 다르게 상점에서 구매하지 않았다. 체칠리오가 막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받았을 때, 알베르타 가문의 (전)가주이자, 체칠리오의 할아버지인 니콜로 알베르타가 그를 위해 손수 지팡이를 제작하여 주었다.
니콜로 알베르타는 체칠리오의 지팡이를 위해서 최고의 재료만을 선별하고, 뛰어난 지팡이 장인인 그가 수년의 시간을 들여서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이야기한다.
체칠리오 또한 이 지팡이를 아끼고 있기 때문에 지팡이 관리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어, 그의 지팡이는 언제나 광이 난다.
체칠리오에 관하여
체칠리오의 생일은 4월 15일이다.
체칠리오는 알베르타 가문의 소속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팡이 장인으로서 재능을 타고 났다. 본인 또한 지팡이를 좋아하니, 그의 취미 같은 것들이 지팡이에 맞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순간부터 졸업하는 순간까지 그의 기숙사가 후플푸프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는 성실한 학생이 아닌 적이 없었다. 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이였으며, 모범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였다. 물론, 약간의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긴 했지만, 아주 약간이였으니.
졸업 이후, 가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개선해야함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1980년, 호그와트를 정식적으로 졸업을 하고 체칠리오는 알베르타 가문 내에서 일명 ‘지팡이 무덤’이라고 불리는 마법부에서 순수하지 않은 마법사들에게 빼앗은 지팡이를 폐기 전 검사를 하는 곳에서 가문의 일을 도왔다.
1985년, 알베르타 가문의 새로운 가주 템페스타 알베르타가 가주 자리에 앉으며, 체칠리오는 알베르타 가문에서 스스로 독립했다. 대외적으로 그는 ‘가주 싸움에서 진 패배자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가문에 대항하는 이단아’이다.
체칠리오 알베르타가 세컨디스에 가입한 연도는 그의 호그와트 졸업 이후 5년 뒤, 즉 1984년이다.
지팡이 가게, 폴미네에 관하여
체칠리오 알베르타가 가문에서 나와 1983년 호그스미스에 문을 연 지팡이 가게이자, 공방이다.
가게의 이름인 폴미네는 이탈리아어로 ‘번개’라는 뜻이다.
대부분 지팡이만 판매하긴 하지만, 그 밖에 다양한 장신구들도 판매를 하고 있다. 다만 장신구들은 주력 상품이 아니다.
가끔 지팡이를 일부 망가져 울상으로 그의 가게를 찾는 호그와트 학생들을 위해 간혹 지팡이 수리도 해주고 있다.
당연하게도, 영국의 마법 지팡이 사업은 올리밴더가 꽉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다. 정작 가게의 주인은 신경을 쓰지 않지만.
대외적으로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지팡이 가게이지만, 세컨디스에 속한 마법사들과 일부 마법사들에게는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가계이다.
마법부의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팡이를 만들어주거나, 에르베르토를 피할 수 있도록 잠깐 가게의 문을 열어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지팡이 가게, 폴미네의 역활이다.
연표
1979년(17세) : 체칠리오 알베르타, 호그와트 졸업.
1980년 ~ 1983년(18세 ~ 21세) : 알베르타 가문, 마법부의 정책 시행에 발 맞추어 '순수한 마법사에게만 물건을 팔겠다.'선언, 현 가주, 니콜로 알베르타의 건강 악화로 인한 임시 가주 누볼라 알베르타 취임. 체칠리오 알베르타, 일명 '지팡이 무덤'에서 근무
1984년(22세) : 알베르타의 가주, 니콜로 알베르타 사망. 체칠리오, 세컨디스 가입
1985년(23세) : 템페스타 알베르타 정식 가주 취임. 체칠리오 알베르타, 알베르타 가문에서 나와 독립